공부/독서

슬로 리딩 : 느린 것 같지만 빠른 공부법

나는 왜 학생 때는 공부를 하지 않다가 지금에 와서 공부한다고 난리를 치는 걸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스스로 하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닐 땐 왜 그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저 하라니까. 혹은 시험을 보니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공부는 하고 싶어서, 궁금해서 하는 공부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수업의 본질은 학생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고 잘 나아갈 수 있도록 코칭 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왜 학생 때 국어 수업은 그저 시나 외우고 소설의 의의를 단답형으로 외워야 했을까? 하지만 원래 국어 수업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다양한 상황의 맥락을 잘 파악하라고 국어 수업이 기획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특정 문학작품을 배우는 것은 그 문학작품이 세상을 잘 독해했고 작가의 생각을 잘 표현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품 자체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 작품을 통해 세상을 독해하고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은수저 》수업이 등장했을지 모른다.

오늘날 '슬로 리딩'이라 불리는 독서법의 대표주자가 된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님은 1934년 나다 중학교 국어선생님으로 부임한다.(당시엔 슬로 리딩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몇 가지 사건이 겹치게 되면서 《은수저 》수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 사건은 다음과 같다.

그의 수업 철학이 전쟁에 패한 후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서 《은수저》와 연결된다.

《은수저》 수업이란?

은수저 수업은 소설 《은수저》를 가지고 3년간 공부하는 것이다.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의 내용을 직접 체험해보고 샛길로 빠져서 연관된 놀이를 만들어 놀면서 공부하는 수업방식이다. 다케시 선생님은 이 수업을 위해 〈은수저 연구 노트〉를 만들게 된다. 이는 교사로서 학생들을 위한 풀이법, 놀이 방법을 적어둔 것이다.

처음에는 소설 《은수저》의 작가와 편지로 연락하면서 모르는 단어부터 차곡차곡 풀이하여 기록했고 어떻게 하면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다카시 선생님이 어떤 식으로 수업을 했는지 살펴보자. 본문을 인용해본다.

 

국어 수업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 연날리기 장면이 나오면 밖으로 나가 직접 연을 날리고, 막과자가 등장하면 교실에서 실제로 먹어 보는겁니다.(p.44)

카드 대회는 매년 1월 1일마다 100가지 일본 시를 맞추는 놀이지요... (중략) 《은수저》 18장에서 주인공이 100가지 일본 시를 암기해야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거기서 탄생한 ‘샛길’의 일환으로 진행했지요... (중략) 수업에서는 단체전과 개인전 두 가지를 병행했습니다. (p.62~63)

 

이렇게 소설 밖으로 나가는 일은 다카시 선생님은 '샛길'이라고 표현했다. 내 입장에서의 샛길은 기본서 밖으로 나가 다른 책들을 즐겁게 읽고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놀이이자 샛길로 빠지는 것이다.

이게 진짜 공부가 되는 거냐고? 결과적으로는 됐다. 《은수저》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도쿄대학에 그렇게 많이 갔다고 한다. 물론 국어 수업만으로 가능하진 않았겠지만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진짜 공부란 눈앞의 이익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통찰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통찰력을 가지기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일단 통찰력을 가지게 되면 그다음 공부는 쉬워진다. 그래서 슬로 리딩은 '느려보이지만' 사실은 빠른 공부법이다. 하나를 알면 열이 통하게 되는 걸 알게 되는.

그것은 다카시 선생님이 《은수저》 수업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전 공동 연구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고전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팀별로 3~5명씩 모여 자신들만의 주제를 정해 연구하고 리포터를 작성해 제출하게 했다. 그 결과 <논어에 등장하는 인물의 평론 및 그 정신>, <호조키에 관한 무상관>, <이세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시의 테크닉>, <도연초 비판> 등의 주제가 나왔고 더 나아가 모두 55개에 이르는 이 논문들을 학생들이 직접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이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지식은 물론 다양한 것을 배웠을 것이다.

월 1회 독후감

월 1회 독후감 숙제도 있다. 책을 읽히고 글을 쓰게 했다. 한 번은 시집을 숙제로 내 준 적이 있는데 이때는 독후감 대신 시 10편을 써오라고 했단다. 잘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를 지을 때 필요한 ‘선택력’, ‘비판력’, ‘집중력’, ‘단어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등의 능력을 키워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 시들도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슬로 리딩》 책을 쓰던 2012년 다케시 선생님은 100살이 되었다. 그 나이까지도 재래식 책도 만들고 원고 집필, 원고 교정, 문화 교실 강연 등을 진행했고 <은수저 연구 노트>도 새로 쓰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3년에 돌아가셨다. 정말로 긴 세월, 천천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삶을 지내셨던 것 같다.

나도 다케시 선생님처럼 《은수저》 수업을 해보고 싶다. 기본서는 《은수저》가 아니겠지만. 자그마한 교실 하나 장만해서 새벽과 저녁에만 열리는 수업을 진행하는 거다. 내가 지금 공부하는 역사와 내 주특기인 글쓰기/독서 수업으로. ^^ (수업이라고는 썼지만 사실상 이고잉님 말씀처럼 지식공유라고 표현하는 게 낫겠다)

10년이든 30년이든 계속해서 연구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업데이트하는 작업.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언제까지나 슬로 리딩이다. 그게 결국은 가장 빠른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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