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 to repair 수리할 권리

창조와 수리 - '수리할 권리' 동아리를 시작하며

수리.

수리라는 말은 '창조' 라는 말과 매우 다르게 쓰인다.

창조: 없던 무언가를 마들어 내는 활동,행위  VS 수리 : 고장나거나 허름한 것을 수리해 고침 (네이버 어학사전참조)

어릴 떄, 에고(ego)로 가득 찼던 어릴 때, 아니 솔직히 말하지면 그리 어리지도 않은 얼마 전까지도, 나는 '창조'라는 단어에 매력을 느꼈다. 창의적인 사람, 창조적인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을 이끄는 것이라는 관념들은 우리 교육 속에서 의식적으로, 무의적으로 '강요' 된 우월을 만들었다. 이 사회는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을 원하는 듯 보였지 무언가 있던 것을 고치는, 고장난 것 혹은 허름한 것을 고치는 행위에 대해 조용한 부끄러운 시선을 던졌을 뿐 박수쳐 주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과연 이 '었다' 라는 말이 맞는지는 심각한 자기 검열에서 주저하게 된다. 였다가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이다' 인지 모른다.) 그런 나에게 수리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수리를 생각하게 된 것은.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며 내 '몸'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노화' 라는 단어가 익숙치 않았던 10대, 20대, 30대는 내 몸도 '창조'에 더 많은 집중을 하듯, 성장하고 (물론 살찌기도 하고 ㅋ) 더 멀리 뛰고, 더 높이 뛰고, 할 수 없던 동작들을 하나하나 내 '몸 사전' 에 새로 써 나갔다. 그러나 40대가 되면서 내 몸은 '창조' 라는 단어보다 '수리' 라는 단어를 하나씩 필요로 해가고 써가기 시작했다. 몸의 기능이 예전과 같이 않다는 것은 건강한 나이지만 당연히 느낄 수 있고. 주위 친구들의 호소로도 충분히 일반적인 현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1년, 2년이 되면서 나는 점차 '수리' 라는 단어에 무의식적으로 끌리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물건을 사용할때 부주의한 편이고, 소위 매우 험하게 쓴다. 물건을 사서 버리거나 (잃어버리는 것도 숟하다.) 고장 내는 물건의 생의 주기가 일반적인 경우의 50%-60%가 평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습관은 꽤 오래된 것이라, 나는 그런 사람인가보다 라고 인정하여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삶의 대부분은. 그렇게 버릴 수 없다. 특히 나의 육신. 나의 능력. 나의 과거와 연결된 사람 등은 고장나거나 쓸모 없을 때 버리고 다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수리'와 소위 'upgrade' 에 가까운 보완 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삶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들은 이제 '창조'가 아닌 '수리'의 개념이라는 것을 나는 받아들이는 나이가 된 것이다.

이 시점에 '수리할 권리' (우리 동아리)를 만나 '수리'를 시작한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삶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연습' 이 필요하다. 나에게 아이폰을 수리하고, 맥북을 수리하고, 오래된 오디오나 비디오를 수리하는 것은 내겐 예전엔 의미 없는 일이었다. 수리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고, 그런 것은 전문가에게 맡겨야하는 일이었다. 나는 시간을 아껴야하고,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 신자유주의 시대에 창조적이라고 간주되는 일들 )을 더 열심히 해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겐 그게 더 중요했다.

그러나!

이젠 내겐 '창조'(생산) 만큼이나 혹은 그 보다 '수리' 가 중요하다.

시간변수에 철저히 따르는 내 몸이라는 어마어마한 함수에서, 얽히고 설킨 나의 감정과 세원의 인연 속에 인간관계, 그리고 습관과 일상이라 불리는 내가 만들어 놓았던 규칙속에 고착된 나 자신의 성격들 . 이 모든 것을 나는 이제 '수리' 하면서 살아가야한다. 그것을 위해 나는 '수리'를 연습하기로 했다.

눈에 잘 보이는 기계. 를 보면서 수리를 배우는 것.

직접 뜯어서 문제를 직면하고 확인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나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부품을 사고 (내게 없는 재화를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교환하는) 잘 모르는 것은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지만 그 역시도 내가 내 '손'으로 해 내는. 그 과정을 나는 시작한다. 그것은 나의 인생을 수리해가면서 살아가는 연습이자 습관이자 훈련이 될 것이니 이 얼마나 의미있는 수업인가.

금상첨화는 이러한 '손'들이 모였다. 두루,서희,상호그리고 은정. 우리 넷은 이렇게 시작했다. 결이 좋은 사람들이 함께, 꾸준히 그리고 즐겁게.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닌 삶을 배우고 의미를 찾고 그리고 '함께' 수리할 권리를 되찾는 여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동아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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