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오튜가 그리고 있는 생태계가 만약 완성된다면 이 생태계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력으로 재현해봤습니다. 어떤 불가사의한 원인으로 오튜(오픈튜토리얼스)가 1억 명이 사용하는 국제적인 서비스가 되었다고 상상해주세요.
“오늘은 오튜의 콘텐츠 기금 정산일입니다.”
오튜의 콘텐츠 생산자 A는 관리 화면에서 이번 달에 300만튜의 수입이 적립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튜’는 오튜의 포인트로,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습니다.)
300만튜는 성인 한 명이 한 달간 생활 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가족까지 부양하기는 어렵습니다. 다행히 그가 오튜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구독자가 생겼기 때문에 출판, 오프라인 강연, 워크숍 등을 통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A의 팬들은 A에게 오튜의 광고를 붙이라고 권유합니다. A는 인기 있는 생산자이기 때문에 광고를 붙이면 800만튜 정도의 수익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A는 선비 같은 사람이여서 광고를 좋아하지 않고, 비즈니스 때문에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도 싫었습니다. A는 오튜 내에서 일체의 상업적인 활동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A는 800만튜를 포기했습니다. 대신 그는 오튜의 콘텐츠 기금 300만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A는 콘텐츠 기금 덕분에 생산자로서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일정한 수입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제도에 만족합니다. 이런 A의 정책 덕분에 A의 구독자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고, 이는 오튜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B는 전자공학과 학생입니다. 처음에는 공부한 것이 있어서 오튜에 수업을 공유 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공유하고 싶어서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1년 동안은 구독자가 별로 없었지만, 3년 전부터 전자공학 열풍이 불면서 구독자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B가 받는 콘텐츠 기금의 크기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B는 더욱 열정적으로 생산활동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오튜의 생산자 기금은 지급 상한이 있었습니다. 현시점에서 오튜에서 받을 수 있는 생산기금의 상한은 350만튜입니다. 기금의 상한에 가까워질수록 수익의 증가 폭이 점점 작아졌습니다.
B는 오튜에서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이 갔습니다. 기금을 받으면 200만튜를 벌 수 있고, 광고를 붙이면 450만튜를 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광고를 붙이기로 합니다. B의 수익은 450만튜로 기금의 상한인 350만튜를 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기금의 지원 대상이 아닙니다.
영리화를 시작한 후에 B는 오튜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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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튜토리얼스 생산자 기금으로부터 독립하신 것에 대한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오픈튜토리얼스는 콘텐츠 기금을 조성해서 비영리 콘텐츠의 자립을 돕고
영리 콘텐츠를 인큐베이팅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든 수익에서 오픈튜토리얼스 측 몫은 콘텐츠 기금을 조성하는 데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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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꽤 오랫동안 450~500만튜의 수익을 유지하던 B는 이번 달 수익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900만튜가 지급되었기 때문입니다. 일 년 등록금보다 많은 돈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가 만들고 있는 전자공학 수업에 참여하려면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인두, 납땜, 건전지, 전선, LED, 모터, 저항…. 이런 것을 수업 참가자가 직접 장만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전자공학 수업을 만들고 있는 B가 이런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B는 콘텐츠 생산은 잘하지만, 상품 판매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B는 C가 필요합니다.
아버지의 전자부품가게를 이어받은 C는 사실 전자공학은 잘 모릅니다. 그냥 부품 이름만 아는 정도입니다. 이에 한계를 느껴서 B의 수업을 들으면서 전자공학에 막 눈떠가던 참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오튜라는 서비스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튜의 기능을 살펴보던 C는 오튜에 쇼핑몰 모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호기심에 모듈을 하나 만들었고 거기에 상품도 토픽으로 등록해 두었습니다. 역시나 방문자가 없기 때문에 수익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주문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라서 오튜의 관리 페이지로 접속해보니 B가 C의 전자부품 상품 토픽을 자신의 모듈에 붙였던 것입니다. 콘텐츠와 상거래가 결합했을 때의 화학적 반응은 예상외로 강력했습니다.
B의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수업에 필요한 부품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고, 또 수업에 대한 고마움을 표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곳에서 살 이유가 없었습니다.
C의 입장에서는 오튜에 판매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이것은 아마존이나 이베이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특별히 불만은 없었습니다.
B의 입장에서는 구독자들이 쉽게 준비물을 마련할 수 있고, 또 광고보다 수익이 훨씬 높으므로 만족스럽습니다.
B는 졸업 후에는 콘텐츠 생산에 전념해서 친절하고 체계적인 전자공학의 안내서를 완성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운영자 중 한 명인 D는 오튜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습니다.
그는 오튜에서 주요 IT 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습니다. 그는 유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튜보다 좋은 조건으로 그를 스카우트하려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직을 생각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오튜가 표방하는 ‘충분하면서 과하지 않은’이라는 임금 기준에 동의합니다. 오튜는 ‘충분하면서 과하지 않은 수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정기적으로 합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연봉협상이라고 부르죠. 이렇게 산정된 개인의 임금은 내부에 공개되고, 개인정보를 제외한 후에는 외부에 공개됩니다.
한편 오튜는 ‘직무 연관성’이 없는 범위에서 겸직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오튜는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구성원에게 주식증여 등을 통해 부자가 될 기회를 줄 수는 없습니다. 대신 구성원이 다양한 방법으로 수익을 다중화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있는 D는 오튜의 재택 문화를 선호합니다. 오튜는 사무실을 ‘모니터실’이라고 부릅니다. 모니터를 놓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사무는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는 것이 오튜 운영자들의 생각입니다. 다만 집에서 일이 안 될 때는 나와서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카페는 의자도 불편하고, 자기 모니터도 없기 때문에 일 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이런 때 나와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모니터실입니다. 오튜의 운영자들은 사무실 체류시간과 성과가 무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구성원을 알고 있는 것도 좋습니다. 오튜는 운영자 전체가 40명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니터실은 20명도 수용하기 어려운 크기로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곳에 있습니다. 전체가 한 번에 모일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1억 명이 사용하는 온라인 서비스가 이렇게 궁상맞게 지내는 이유는 ‘콘텐츠 기금’ 때문입니다. 오튜의 핵심 가치는 콘텐츠 기금에 있습니다. 운영자들은 이 기금이 단체 자체를 유지하는데 대부분 사용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운영비를 높이지 않으면서 운영진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출을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튜는 매년 지출모델 보고서를 작성해서 오튜가 주요 IT기업 대비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외부에 발표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D는 오튜에서 계속 일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D의 두 딸이 엄마가 오튜의 운영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