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튜토리얼스의 첫 번째 편지에 이은 두 번째 편지입니다. 오늘은 opentutorials.org(이하 오튜라고 부르겠습니다)의 기능적인 계획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튜를 5년간 운영하면서 여러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아이디어가 한가지가 있었는데요. 저희는 이것이 오튜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두 개의 단어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분해, 조립
조립
저희가 지난 5년간 매료된 관념이 바로 조합, 조립, 결합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주기율표입니다. 원소들을 나열해서 보여주고 있죠.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소가 사실 몇 개가 되지 않고, 그 원소를 결합해서 이렇게 복잡한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또 단지 30개의 단어를 주어+동사+목적어+전치사+명사의 어순으로 결합하면 무려 100,000개 이상의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작은 부품을 결합하는 단순한 방법을 통해서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 놀라움을 콘텐츠 영역에도 적용해보고 싶습니다.
그 계획을 설명해 드리기 위해서 우선 오튜가 현재 어떤 기능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저희와 함께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보시죠.
부품들
오튜에는 이런 부품이 있습니다. 토픽이라는 부품이 모여서 모듈이 되고, 모듈이라는 부품이 모여서 코스가 됩니다.
그런데 오튜에서 생산해본 적이 없는 분들은 아마 토픽, 모듈, 코스라는 개념이 생소하실 거예요. 그래서 정리해봤습니다.
토픽 topic
하나의 글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포스트라고 보통 부르죠. 오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듈 module
토픽을 모아둔 것입니다. 보통 블로그나 게시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코스 course
모듈을 모아둔 것입니다. 오튜에서 가장 큰 단위라고 할 수 있죠. 여러 게시판이 모여있는 웹사이트와 비슷한 단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를 포함 관계로 본다면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튜의 특별함은 바로 모듈과 코스의 관계에 있습니다. 오튜에서는 타인이 만든 모듈을 부품으로 사용해서 새로운 코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웹 에플리케이션 만들기 모듈은 독립적으로도 존재 하지만, 동시에 생활코딩 코스와 선생님을 위한 프로그래밍 수업 코스에 부품으로써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의 모듈은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동시에 다른 코스의 부품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튜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모듈의 내용이 수정되면 이를 사용하는 코스에도 자동으로 반영됩니다. 또 코스에 붙은 모듈에 사용자들이 댓글을 달고, 공동공부에 참여하면 모듈에도 반영됩니다. 코스는 좋은 모듈을 필요로하고, 모듈은 더 많은 코스에서 사용될 때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오튜의 모듈은 혼자서도 잘 있을 수 있지만 같이서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오튜가 오픈라이선스 콘텐츠만을 수용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을 보호하는 저작권도 귀중한 가치입니다만, 동시에 창작자가 타인의 콘텐츠를 사용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자유인 창작의 자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튜의 모든 콘텐츠는 타인이 자신의 콘텐츠를 사용해도 좋다는 것에 동의한 오픈라이선스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 때 타인의 것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분해
그런데 저희에게는 큰 후회가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죠. 오튜의 모듈은 독립적입니다. 코스 없이도 혼자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다른 코스의 부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듈의 부품인 토픽은 모듈에 종속 되어 있습니다. 토픽은 그 모듈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듈이 사라지면 토픽도 사라집니다.
이런 상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왼쪽 그림에서 모니터는 컴퓨터의 부품이지만 컴퓨터로부터 분리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다른 컴퓨터의 부품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오른쪽 컴퓨터의 모니터는 컴퓨터와 일체형입니다. 컴퓨터가 사라지면 모니터도 사라집니다.
저희는 토픽을 처음부터 모듈로부터 분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 후회를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모듈로부터 토픽을 분리하게 되면 토픽은 더는 모듈의 부속품이 아닙니다. 당당하게 혼자서 존재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됩니다. 동시에 여러 모듈에 소속돼서 사용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석하게도 모듈로부터 토픽을 분리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구조를 상당히 바꿔야 하는 일이고, 무엇보다 오튜 개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저희는 이 일을 추진하기 어려웠습니다. 겨울이 온 것이죠.
하지만 저희는 겨울을 무사히 지나왔습니다. 만약 저희가 일반적인 기업이었다면 이 서비스는 예전에 종료되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오튜는 이미 여러 번의 겨울을 지나왔기 때문에 이 겨울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 운영진은 봄이 올 때까지 열심히 오튜의 콘텐츠를 만들고, 오튜에 사용할 기술을 수련하고, 함께 할 사람을 모으는 작업을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봄이 다시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Start small!
토픽을 분리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도 중요합니다. 오튜에서는 하나의 글인 토픽을 작성하려면 모듈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모듈을 채워야 하는 부담감이 생깁니다. 큰 규모의 콘텐츠를 생산해본 적이 없는 분에게 이것은 큰 장벽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부터 모듈이나 코스처럼 큰 그릇을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토픽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여러 토픽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비슷한 성격의 토픽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럼 서로 연관된 토픽을 묶기 위해서 새로운 모듈을 만들면 됩니다. 모듈이 많아지면 그것을 다시 코스로 묶어서 더 큰 규모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모듈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개편 이후에는 토픽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댓글부터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또한 모색하고 있습니다. 댓글은 누구나 써봤으니까요.
세상에는 다양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 경험들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하지만 단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이러한 경험들이 지식화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튜에 국영수 같이 전통적으로 중요한 지식이 올라오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누구도 지식화해본 적이 없는 세상의 많은 경험이 처음으로 지식이 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오튜가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생산을 시작할 수 있도록 계단을 마련해드리는 것이 저희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아예 에스컬레이터를 놓아드리려고 합니다.
모듈의 타입화
또 하나의 장기 계획은 모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모듈이 다양한 타입을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오튜의 코스 중 하나인 생활코딩은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아쉽게도 커뮤니티 기능이 없습니다. 오튜가 커뮤니티 타입의 모듈을 제공한다면 생활코딩의 운영자는 커뮤니티 모듈을 만들고 그것을 생활코딩 코스에 붙여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커뮤니티가 모듈이기 때문에 생활코딩이 아닌 다른 코스에도 붙을 수 있다는 점이죠. 커뮤니티가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커뮤니티라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다른 코스에 하나의 콘텐츠로써 붙게 되는 것이죠.
동시에 커뮤니티에서 작성된 토픽들은 모듈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므로 다른 모듈에도 붙을 수 있습니다. 토픽이 늘어날수록 더 좋은 모듈이 더 쉽게 만들어질 것입니다.
마치며
저희는 디지털화된 콘텐츠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오튜는 저희가 바라보는 '디지털다운' 것을 그리는 도화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도화지 위에 그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하겠습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저희가 바라보는 오픈튜토리얼스 생태계의 미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아참!
오픈튜토리얼스 프로젝트가 구글에서 진행하는 구글 임팩트 챌린지에 참여했습니다. 구글에서는 비영리 단체들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빠르게 바꿀 수 있도록 좋은 팀을 선발해서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 후원 프로그램에 선발되면 저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좀 더 빠르게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응원해주세요!